윤리적 투자,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가
국내 법령에는 이 용어에 대한 정의가 없기 때문에 전혀 다른 상품들이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어떤 펀드는 무기, 담배, 석탄 관련 기업만 제외합니다. 어떤 펀드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평가가 높은 기업을 골라 담는 ESG 투자 방식을 씁니다. 또 어떤 상품은 지역의 재생에너지 시설이나 사회적기업에 직접 자금을 대고 그 성과를 측정하는 임팩트 투자 방식입니다. 내가 보고 있는 상품이 이 중 어디에 속하는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가치와 수익 약속을 혼동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회책임투자 상품이라고 해서 위험이 작거나 수익률이 높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친환경 기업의 주식도 시장 전체가 하락하면 함께 떨어집니다. 이 방식이 주는 의미는 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고 내가 동의하지 않는 사업을 돕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투자 전에 지원하고 싶지 않은 업종과 우리 집 살림이 실제로 견딜 수 있는 손실 규모를 먼저 적어 두면 판단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겉모습만 친환경인 그린워싱 가려내기
초록색 광고나 좋은 이름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습니다. 지속가능을 내세운 펀드의 상위 보유 종목에 화석연료 기업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서류를 읽는 것뿐입니다. 투자설명서, 자산운용보고서, 상위 보유 종목 목록, 의결권 행사 내역을 살펴보고, 운용사가 이런 자료를 공개하지 않거나 찾기 어렵게 해 두었다면 윤리적 약속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국내 ESG 투자 상품을 검증하는 기준과 공시
국내에는 개인용 펀드에 붙는 공식적인 윤리 인증 마크가 따로 없습니다. 그 대신 몇 가지 공개된 기준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마련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이른바 K-택소노미는 어떤 경제활동을 친환경으로 볼 수 있는지 정한 기준입니다. 펀드나 채권이 녹색이라고 주장할 때 이 기준에 맞는 활동에 돈이 쓰이는지 묻는 것만으로도 과장된 광고를 상당 부분 걸러낼 수 있습니다.
기업 단위의 정보도 공개되어 있습니다. 한국ESG기준원은 매년 상장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급을 발표하고, 한국거래소의 ESG 정보 포털에서는 상장사의 ESG 관련 정보와 녹색채권, 사회적채권, 지속가능채권 같은 ESG 채권 정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평가기관마다 방법이 달라 같은 기업이 다른 등급을 받기도 하므로, 등급 하나만 믿기보다 여러 자료를 함께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해외 기준이 적힌 상품을 만났을 때
국내에서 판매되는 해외 펀드나 해외 상장지수펀드에는 유럽연합의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정에 따른 분류가 적혀 있기도 합니다. 이 규정에서 8조 펀드는 환경이나 사회적 특성을 촉진하고, 9조 펀드는 지속가능한 투자 자체를 목표로 합니다. 다만 이것은 품질 인증이 아니라 공시 범주일 뿐입니다. 분류를 확인한 뒤에도 실제 보유 종목과 제외 기준을 직접 읽어 보는 과정은 생략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ESG 펀드를 고를 때 따라야 할 순서
ESG 펀드와 ESG 상장지수펀드는 은행, 증권사, 온라인 증권 계좌에서 소액으로 적립식 투자가 가능한 경우가 많고,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같은 절세 계좌에 담을 수 있는 상품도 있습니다. 후보가 생기면 먼저 총보수와 판매수수료, 환매수수료 등 연간 비용을 확인합니다. 그다음 과거 수익률이 아니라 투자 전략과 보유 종목을 읽습니다. 과거 성과는 미래를 약속하지 않으므로 같은 주제의 상품 여러 개를 비용과 내용으로 비교해야 합니다.
지수형과 운용형의 차이도 알아 두어야 합니다. ESG 지수를 따라가는 지수형 상품은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어떤 기업을 제외할지는 지수 산출기관의 기준에 맡겨집니다. 운용형은 운용역이 기업과 대화하고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해 개선을 요구하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우지만 보수가 높은 편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기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과 감당할 수 있는 비용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책임투자 방법입니다.
투자설명서 20분 점검법
우선 간이투자설명서에서 위험 등급, 비용 항목, 운용 전략을 확인합니다. 다음으로 월간 운용보고서에서 상위 10개 종목과 업종별 비중을 보고 지원하고 싶지 않은 기업이 포함되어 있는지 살핍니다. 마지막으로 운용사 홈페이지에서 수탁자 책임 활동 보고서나 의결권 행사 내역을 확인합니다. 이 세 가지만 읽어도 이름만 ESG인 상품과 원칙을 실제 운용에 반영하는 상품의 차이가 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금, 상호금융, 크라우드펀딩으로 실천하는 임팩트 투자
주식과 펀드만이 책임 있는 돈 관리 방법은 아닙니다. 신용협동조합처럼 조합원이 함께 소유하는 상호금융기관은 조합원의 예금을 지역 조합원에게 다시 빌려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규모가 큰 금융그룹보다 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상대적으로 가깝게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입 전에는 출자금 조건, 조합원 자격, 예금 보호 방식이 일반 은행과 어떻게 다른지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에서는 사회적기업, 지역 재생 사업, 친환경 스타트업 같은 개별 사업에 주식이나 채권 형태로 직접 투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응원하는 사업을 직접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 회사에 돈이 집중되므로 사업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원금을 잃을 수 있고, 비상장 증권이라 중간에 팔기도 어렵습니다. 중개업체가 금융당국에 등록된 곳인지 확인하고, 투자금을 여러 사업에 나누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보호되는 돈과 보호되지 않는 돈
은행과 저축은행 예금은 예금자보호제도에 따라 금융회사별로 1인당 1억 원까지 원금과 이자가 보호되며, 신용협동조합이나 새마을금고 같은 상호금융은 각자의 기금으로 별도 보호를 받습니다. 반면 펀드, 주식, 회사채, 크라우드펀딩 투자금은 보호 대상이 아닙니다. 이런 상품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잃을 수도 있는 돈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지출에 대비한 비상금은 반드시 보호되는 예금에 두세요.
윤리적 투자, 위험과 비용을 숫자로 따져 보기
주제형 ESG 펀드나 임팩트 투자 상품은 재생에너지, 2차전지 같은 특정 업종에 자금이 몰리기 쉽고, 그 업종이 부진하면 시장 평균보다 훨씬 크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친환경 관련 종목이 크게 오른 해도 있었지만 금리 상승기에 급락한 해도 있었습니다. 최소 몇 년 이상 보유한다는 전제로 계획을 세우고, 월세, 대출 상환, 공과금처럼 곧 써야 할 돈은 절대 투자에 넣지 않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원칙입니다.
비용은 수익을 확실하게 깎아 먹습니다. 운용형 ESG 펀드는 지수형보다 총보수가 높은 경우가 많고, 몇 년만 지나도 차이가 눈에 띄게 커집니다. 판매수수료, 계좌 관리 비용, 크라우드펀딩 중개 수수료까지 모두 더한 뒤, 같은 지역과 자산에 투자하는 일반 지수형 상품과 비교해 보세요. 윤리적 원칙을 위해 약간의 비용을 더 내는 것은 선택할 수 있지만, 이름 하나 때문에 몇 배의 비용을 낼 이유는 없습니다.
세금과 절세 계좌 활용
펀드 분배금과 예금 이자 같은 금융소득에는 일반적으로 이자·배당소득세가 원천징수되며, 금융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종합과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나 연금저축계좌 같은 절세 계좌를 활용하면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의무 보유 기간이나 중도 인출 제한 같은 조건이 붙습니다. 제도는 자주 바뀌므로 금액이 크다면 국세청 안내나 세무 전문가를 통해 최신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빚이 먼저다: 윤리적 투자 시작해도 되는 시점은 언제인가
카드론, 현금서비스, 리볼빙, 고금리 신용대출의 이자를 내고 있다면 상환이 거의 언제나 더 이익입니다. 이런 대출 금리를 꾸준히 넘어서는 투자는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순서는 새 대출을 멈추고, 금리가 높은 빚부터 갚고, 몇 달치 생활비를 예금으로 모아 둔 다음, 그 후에 소액 적립식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지키는 것 자체가 내 가계에 대한 가장 책임 있는 선택입니다.
빚을 내서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는 절대 피해야 합니다. 신용융자나 마이너스통장, 카드론으로 주식이나 가상자산, 펀드를 사면 가격이 떨어져도 원리금 상환은 그대로 남아 손실이 두 배가 됩니다. 원금 보장에 고수익, 사회공헌으로 확실히 불어나는 상품이라는 권유는 환경이나 복지를 앞세운 투자사기의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이미 빚으로 힘든 사람일수록 표적이 되기 쉬우므로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계약하지 말고 제3자에게 먼저 물어보세요.
상환이 밀리기 시작했을 때
매달 소득으로 원리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면 투자 계획은 잠시 내려놓고 가계 재정비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연체가 길어지기 전에 금융회사에 연락해 상환 유예나 조건 변경이 가능한지 문의하세요.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서민금융진흥원의 상담,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법률 지원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수입과 지출이 안정된 뒤 다시 계획하면 윤리적 투자를 부담 없이 오래 이어 갈 수 있습니다.
